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국제공항 (문단 편집)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include(틀: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파일:10541102541.jpg]]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붙여놓은 홍보문구. '''"[[최루탄]]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 [[홍콩 영어]]에서는 Expired가 "만료된, 폐기된"의 뜻이 아니라, [[광동어]] 爆자의 영향을 받아 "터져버린"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홍콩 영어 Expired Tear Gas는 "터진 최루탄"으로 번역해야 옳다.] [[2019년]] 홍콩 종심법원의 공항지구 점거금지명령과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2019년]] 8월 12일에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했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6&aid=0010731662|홍콩 국제공항 항공편 전면 취소…시위대 공항 점령]] 이 날 시위대가 일시적으로 공항을 점거하자 당황한 항공당국이 공항을 폐쇄했고, 이후 경찰이 '''테러'''로 간주하고 [[경찰특공대]]와 최루탄 등을 동원한 강제 진압을 준비하자 대부분 시위대가 자진 해산해 13일 새벽에는 공항 운영에 문제가 없어졌다가 오후에 다시 전면 중단되었다. 이 때 당시 경무처장 [[스티븐 로]]는 전 경무부처장 겸 작전부처장이었던 [[앨런 로]]를 재복귀시킨 후 공항 내의 시위대를 진압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때 시위대는 여전히 항공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는 차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 14일에 홍콩 종심법원[* [[대법원]] 급이다.]이 '''점거금지명령'''을 내려서 공항 시위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강경대응을 했으며 남아 있던 시위대는 [[홍콩 경찰]]이 진압봉과 최루액 등을 동원, 5명을 불법집회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하고 해산시켰다.[[https://www.scmp.com/news/hong-kong/transport/article/3022684/court-order-bans-protests-hong-kong-airport-apart?utm_medium=Social&utm_source=Facebook&fbclid=IwAR1nX0rXTV7bceUMU_37EHTHV5Uul_0SAfM0tKlKe_0tZLd8UvJIL_sjV3M#Echobox=1565745909|링크]] 자세한 내용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일자별 경과/2019년 8월|항목]] 참조. 공항 점거시위는 그 과격함과 쉽사리 이성을 잃고 흥분한 모습까지 보인 탓에 역풍을 맞아 세계적으로도 어느 정도 지지가 깎여나가는 결과를 초래했고, 공항청사 점거가 금지되자 시위 주최 측은 사과문을 낸 후 '''다시는 공항 청사를 점거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전혀 효과가 없었고 되려 세계적으로 지지는 커녕 질타 대상이 되어 역풍을 크게 얻어맞았다. 원래 공항 시위는 연좌농성 형식으로 평화롭게 출국장이 아닌 입국장 한 켠에 주저앉아 교대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것이였으며 관광객들도 이때는 지지를 보냈다. 이때만 해도 시위대도 과격 성향이 대부분인 어린 학생층이 아닌 공항 직원들이어서 친절하게 이것저것 안내해주고는 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8월 12일 오후 거의 어린 학생층인 과격 시위대가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공항 출국장에 올라가 출국장 로비를 점거하면서 깨졌고[* 이 쯤에선 공항 직원들은 시위 참여를 제지당해서 가지 못했다. 잃을 게 많은 가정을 가진 직장인과 잃을 거 없고 나이도 어려 사회경험조차 없어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층 중 누가 과격할진 뻔하다.], 이후 처음에 지지하던 외국 관광객들은 되려 시위대와 언성 높이고 쌍욕까지 하며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시위대는 중국본토인 2명을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스파이''' 내지는 [[홍콩 경찰]] 사복경관이라고 주장하며 린치까지 벌였다. 이 때 이 둘 중 한 명은 단순히 [[선전시]] 공안국 경찰관과 동명이인인 홍콩에 사는 중국본토인 대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진짜 중국 스파이일 수 있는 [[환구시보]] 기자[* [[중국 공산당]]은 환구시보나 신화통신 기자 신분으로 스파이를 세계 곳곳에 보낸다.]였는데 이 두 사람을 [[소방관]]들이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국 [[경찰기동대]] PTU가 공항에 최루가스와 진압봉은 물론 실탄 장전 [[자동소총]]까지 들고 들어와 이성을 잃고 폭도화된 시위대를 해산시킨 후 몇 명을 체포해 갔다. 참고로 이 때 PTU는 [[장갑차]]를 끌고 오고 여차하면 공항 내에서 '''최루탄 발사'''를 할 준비는 물론 실탄까지 쏠 계획이었다. 그리고 공항 돌입작전의 지휘관은 [[데이비드 조던]]과 [[루퍼트 도버]] 두 사람으로 이 둘은 [[장갑차]]를 끌고 최루탄은 물론 실탄이 가득 장전된 [[자동소총]]까지 들고 와서 여차하면 발포할 준비까지 했다. 만에 하나 시위대가 계속 고집부렸으면 공항 시위는 국제공항에서의 최루탄 발사 및 유혈진압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 날 공항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갇혀 버렸단 공포심과 서로를 못 믿는 상호 불신이 만나, 여기에 사회경험이 없어 미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던 시위대의 멘탈이 제대로 파괴되어 문자 그대로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난 셈이었으며 결국 제대로 역풍을 얻어맞아 되려 홍콩 정부가 원하던 그림이 그려지는 꼴이 되어버렸다. 즉 공항 시위는 완전히 실패했고, 다시는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역풍만 얻어맞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며 이때부터 슬슬 시위대에 대해 조롱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콩인 사이에서 이렇게 과격하게 해봤자 소용없다며 회의감이 슬슬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감이 급속히 퍼진 건 같은 해 11월 총파업+ 대학가 점령 시위가 실패하면서 절정에 이르러서 [[홍콩이공대학]]에 과격 시위대가 토끼몰이로 경찰의 덫에 걸려 몇 주 간 갇혀 버리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절박함이 없어지고 여유를 되찾으며 점거 같은 폭력 과격시위는 완전 퇴출 수순을 밟게 되었다.[* 사실 홍콩 종심법원이 이곳저곳 점거금지명령을 무기한 내려 더이상 점거할 수 있는 곳도 없다.] 거기에 2020년으로 해가 바뀌자 홍콩 정부의 치트키인 [[홍콩 국가보안법]] 전면 적용으로 지난 2019년 최전선 시위대였던 용무파는 대부분 몰래 체포되거나 경찰의 체포망을 피해 대만, 싱가포르로 망명해버리거나 활동중단을 선언하고 엎드려 살게 되며 와해되었다. 이 사건을 본 대다수 홍콩인들은 학생들이 조금 더 침착했어야 한다며 지나치게 과격한 방식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그 결과 8월 18일 민간인권전선이 '''초심으로 돌아가자''' 며 내놓은 구호 하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평화행진을 벌이며 폭력시위와 무력진압을 모두 규탄했다. 그리고 시위대 진영은 8월 18일 이전까지 전례없는 사과문까지 내며 한동안 엎드려 있어야 했고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잘 알다시피 종심법원에 의해 '''무기한 점거금지명령'''이 내려지고, 테러가 잦은 [[이스탄불 신공항]]이나 [[1988년]] 북한의 위협 속에서 서울 올림픽을 치르던 과거 [[김포국제공항]] 마냥 공항 외부에 커다란 방호벽을 치고 통문 2개만 남기고 모두 폐쇄한 후 경찰이 공항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며 사실 상 일반인의 공항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공항에 올려면 유효한 당일 티켓과 여권을 둘 다 들고 와야하며 티켓이 진짜 유효한지 공항 보안원들이 일일이 확인하고, 기습시위나 테러 등에 대비해 완전무장한 [[경찰기동대]] 대원들과 공항경찰대가 24시간 대기 중이며 사복경찰이 티켓팅하고 나갈 때까지 감시하기도 한다. 마스크를 쓴 경우 벗으라고 경찰이 요구하면 벗어야 한다. 즉 공항 시위는 결국 과격 시위로 번지며 영구히 퇴출되어 버려서 홍콩에선 더 이상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대신 엉뚱하게 다른 데 수출되어 [[스페인]]에서도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엘 프라트 공항]]이 [[카탈루냐 독립운동]] 시위대에 점거, 이틀 간 마비되기도 했다. 이 때 [[스페인 국가경찰]]은 무려 [[장갑차]]와 [[대테러부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한편으로는 첵랍콕 공항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안상태가 그대로 노출된 격이라 항간에선 이게 만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같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면 어쩔 뻔 했냐고 질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공항 시위 사태가 첵랍콕 공항의 보안도만 올려준 셈이 되었다.[* 사실 홍콩같은 [[국제도시]]에서 공항이 고작 시위대에 간단히 뚫린 자체가 보안에 문제가 많았단 이야기나 다름 없다. 한국은 [[분단국가]]라 공항 보안상태가 세계 챔피언급으로 단 한번도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한 적도 없었다. 공항 보안수준이 [[세계]] 최고수준이기 때문에 점거할 수 없다. 당장 [[인천국제공항]]만 가도 [[장갑차]]와 [[경찰특공대]]가 외곽, 공항경찰대가 청사 내에서 각각 [[자동소총]]과 실탄으로 무장하고 경계근무 중이며 해안선도 [[인천해역방어사령부]]와 [[해양경찰청]]이 철통 방어하여 시위대가 맘 먹고 점거하려 해도 점거도 하기 전에 해산당하거나 재수없으면 테러범으로 간주당해 벌집이 된다. 홍콩공항은 이에 비하면 보안수준이 없는 거나 다름없던 수준으로 개구멍이었단 얘기다. 진짜로 [[알 카에다]] 같은 또라이들이 테러했을 경우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어이없게 과격하고 시위대에 손실을 안겨준 사건인지라 항간에선 사실 [[스티븐 로]] 당시 경무처장[* [[홍콩 경찰]] [[경찰청]]을 경무처라고 한다.]이 입법회 점거와 함께 시위 진압 명분을 얻으려 일부러 과격행동을 방치했다 내지는 사복경찰들이 시위대를 선동하게 하여 과격행동을 유도했던 제법 설득력 있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주장의 근거로 두 사건 모두 시위대가 점거할 시 경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단 것. 사실 공항 시위 때만 해도 그 많던 공항경찰들이 그 날만은 코빼기도 안 보였으며 경찰은 이틀 뒤에나 꾸역꾸역 나타났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홍콩공항의 보안수준은 거의 [[이스탄불 신공항]]과 동급으로 올라가서 '''24시간 유효한 항공권 + 여권'''을 소지해야 입장이 가능하며 진짜로 공항 직원들이 일일이 티켓과 여권을 100% 대조해서 검사해 확인 후 들여보내고, 좀만 수상하면 옆에 대기하는 경찰관들이 연행해 간다. 그래서 이 공항을 이용해 출국할 경우 몇 시간 여유를 갖고 플러스로 항공권을 출력해서 갖고 오는게 낫다. 그리고 손님을 맞으려 픽업을 나올 경우 양해를 구하고 주차장까지 나오라고 해야 한다. 공항청사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항공권이 당일 항공권이 아니고 여권이 없으면 공항에 들여보내지를 않는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출입통제가 기본적인 모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 접어들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여파로 공항에 출입하는 사람 자체가 없어진데다 점거금지명령으로 공항지구 자체에 항공권 없이는 진입조차 못 하게 되고 플러스로 [[홍콩 국가보안법]]이라는 초유의 치트키를 홍콩 정부가 치게 되면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대신 엉뚱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스페인]] [[카탈루냐]]에 영감을 줘서 바르셀로나 공항도 똑같이 점거당했다가 [[스페인 경찰|스페인 국가경찰]] 기동대가 최루탄을 발사해서 진압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다 지나간 지 3년이 된 [[2022년]] 홍콩의 출입국이 마침내 개방되었고 무격리 여행도 가능해졌지만[* 초기에는 3일 동안 Yellow Code를 받고 식당 내 식사가 불가능한 등 일부 제약은 있다만 호텔에서 대책없이 최대 3주를 격리하던 판데믹 시절보단 많이 나아졌으며 2022년 12월 이후에는 이조차 날아갔다.] 국가보안법이 이미 통과한 지 오래이고 공항청사 경비도 삼엄해져서 공항에서의 시위 등 이벤트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홍콩인들부터 사실 당시 공항 시위가 정부의 반간계에 넘어가서[* 실제로 시위 현장에서 폭력시위를 선동하는 언더커버 경찰관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많이 있었다. 근육질 덩치 큰 남자나 여경 언더커버로 추정되는 키 큰 여성 등이 폭력시위를 선동하다가 옆에 삼단봉 및 권총을 찬 모습을 걸리기도 했다. 이 외에 폭력시위 자체가 정부의 반간계였다는 음모론은 홍콩 사회에 많이 퍼졌고 증거도 실제로 많다.] 과격시위로 변질되어 진압 명분만 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